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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홍의 漢文 산책)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6년 09월 07일
↑↑ 김 선 홍
횡성신문 운영위원회 위원
ⓒ 횡성뉴스
8월 29일은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의 탄생일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詩人)인 그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통해 한문(漢文) 공부를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선생은 1879년(고종 16년) 충청남도 홍주군(현 홍성군)에서 청주한씨(淸州韓氏)의 명문가(名門家)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아명(兒名)이자 본명(本名)은 유천(裕天(1))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배워 《四書三經 사서삼경》과 한시(漢詩) 등에 능통하였다. 

그 후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2))과 명성황후시해사건(乙未事變(3))이라는 환란(患亂)을 목도(目睹(4))하면서 1896년(18세) 무렵에 설악산 오세암(雪嶽山 五歲庵)으로 들어갔다가 1905년(27세)쯤에 정식으로 스님이 됩니다. 용운(龍雲) 법명(法名)이고 만해(萬海(5))는 법호(法號)입니다.

1. 독립운동가로서의 역경(逆境)
1919년 우리 민족의 일제에 대한 거대한 저항운동이었던 3·1독립만세운동(三一獨立萬世運動)의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사람으로 공약삼장(公約三章(6))을 추가로 작성, 완성했다고도 합니다. 서울 태화관(太和館)에서 선생의 선창(先唱)으로 민족대표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 삼창을 외친 후 곧바로 일제의 경찰에게 체포,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의 옥고(獄苦)를 치르셨다. 출옥 후에도 창씨개명(創氏改名(7)), 조선인 징용(徵用(8)) 반대 등 끝까지 일제에 저항했다. 특히 서울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9))을 지을 때,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어 일부러 북향(北向)했다는 일화(逸話)가 전해진다.

2. 《님의 沈默》을 쓴 저항의 민족시인
《님의 沈默(10)》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저항시(11)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한 구절입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아니 내일도 님을 부르고 또 부를 것입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우리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1) 裕天(넉넉할 유, 하늘 천) : 선생의 아명. *兒名(아명)-어릴 적 이름, 冠名(관명)-성인이 되어 지은 본명, 字(자)-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꺼려 일상에서 편하게 부르는 대체 이름. 號(호)-본인의 인생관과 취향이 담긴 별칭으로 雅號(아호: 우아한 이름, 예) 栗곡율곡), 堂號(당호: 자기 집의 명칭을 딴 이름, 예) 申師任堂 신사임당), 諡號(시호- 죽은 뒤에 임금이 공을 치하하기 위해 내리는 이름 예) 忠武公 충무공) 등이 있다. 참고로 죽은 자를 부를 때는 생전의 이름을 꺼려 諱(휘, 꺼리다)를 붙여 썼다. 조선(朝鮮)에서는 임금이 죽은 뒤에 廟號(묘호)를 올리는데 조(祖)와 종(宗)을 썼다. 太祖(태조), 世宗(세종), 高宗(고종) 등

(2) 東學農民運動(동학농민운동) : 1894년(갑오년)에 일어났던 조선 최대의 민중항쟁. 반봉건적인 사회개혁과 반외세의 자주국권을 내세웠다. 당시 들어온 서양의 천주교를 西學(서학)이라 하니, 이에 반하여 우리 학문(종교)이라는 의미의 東學(동학)이라 했다.
 
(3) 乙未事變(을미사변) : 1895년(을미년), 당시 조선 조정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견제하고자 친러시아 정책을 펴고자 했다. 이에 일본군은 낭인(일종의 강패 자객)을 동원해서 경복궁 건청궁(乾淸宮)으로 난입하여 國母(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弑害)하고 그 시신을 불태우는 등의 前代未聞(전대미문) 만행을 저질렀다.
 
(4) 目睹(눈 목, 볼 도) : 눈으로 직접 봄.
 
(5) 萬海(일만 만, 바다 해) : 한용운 선생의 法號(법호)로 만 가지의 물줄기가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듯이, 그 진리의 바다 또는 부처님의 끝없는 공덕(功德)을 의미함. 불교를 상징하는 卍자를 쓰기도 한다. 만해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고 사회개혁에 선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朝鮮佛敎維新論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주장했다.

(6) 公約三章(공약삼장) : 1919년 3·1운동 당시 태화관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의 부록으로 세 가지의 행동강령(行動綱領). 이를 만해가 주도하여 최종 마무리했다고 전해진다.

(7) 創氏改名(비롯할 창, 성씨 씨, 고칠 개, 이름 명) : ‘일본식으로 성씨(姓氏)를 새로 만들고 이름을 바꾼다.’라는 뜻으로 일본의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이런 무도한 짓을 실행하였다.

(8) 徵用(부를 징, 쓸 용) : 사람들을 강제로 불러 모아 부려 먹음. 일제가 조선 사람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군사 및 노동을 시켰다.

(9) 尋牛莊(찾을 심, 소 우, 집 장) : 1933년에 지어 만해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집. 당시의 조선총독부를 향하는 것이 싫어 북향(北向)으로 지었다. 여기서 심우(尋牛)는 ‘잃어버린 소를 찾는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소(牛)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 즉 ‘깨달음’과 동시에 ‘빼앗긴 조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10) 《님의 沈默》: 한용운 선생의 대표적인 시집(詩集)이자 시(詩)로 ‘님’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 절대적인 진리나 불성(佛性)을 의미함. 반어적 표현
 
(11) 抵抗詩(저항시) : 국가권력이나 외세의 침략에 맞서 불의와 압제에 맞서고 모순된 사회를 비판 풍자하는 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는 한용운을 비롯하여 <광야>의 이육사, <서시>의 윤동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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