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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1) 조태진 전 군수

도의원에 이어 초대 민선군수로 당선
3선 연임으로 11년 동안 횡성 도시기반의 기틀 마련
횡성한우, 안흥찐빵, 횡성더덕 명품화 성공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25일

횡성 발전의 초석을 놓았던 조태진 전 군수

↑↑ 조태진 전 군수는 매일 휘트니스클럽에서 1시간가량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 횡성뉴스

횡성은 1995년 지방자치제도 부활과 함께 민선시대를 열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횡성에 도시기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해를 거듭하면서 발전의 속도도 빨라졌다. 횡성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많겠으나 가장 독보적인 한 사람으로 조태진 전 군수를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태진 군수는 초대 민선군수로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할 정도로 군민의 신망이 두터웠고, 2006년 6월 퇴임하기까지 11년 동안 횡성한우, 안흥찐빵, 횡성더덕 명품화 사업을 비롯해 앞들구획정리, 종합운동장을 비롯한 체육 인프라 확장 등 굵직한 업적을 수없이 남기며 오늘날 횡성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퇴임한 이후에도 지금까지 각종 사회단체를 이끄는 등 지역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조태진 전 군수. 횡성신문이 새롭게 기획한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시리즈 첫 번째 손님으로 지난 9일 조태진 전 군수를 모셨다. 그는 읍내 한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중이었다.

- 3선 군수로서 지금의 횡성군정을 어떻게 보시는지
▶군수는 정치가로 생각하면 안 돼

군정의 목적은 군 살림살이를 잘 챙겨서 좀 더 살기 좋고 군민들이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군민의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군수가 정당에 속해 있어서 선거 때마다 편을 가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고, 선거가 끝나도 편가르기가 계속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군수는 정당을 위한 군수가 아니라 군민을 위한 군수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군민이다. 다 끌어안아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 정당공천제가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편가르기가 없어진다. 군수는 정치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의회도 마찬가지다. 군수와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은 군수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도 예산을 따와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예산이 삭감되기도 했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정치적인 입장보다는 군민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 초대 민선군수부터 3선까지 11년을 돌아보면
▶군수 11년, 횡성 도시기반 기틀 마련 보람

초대 민선군수에 당선된 해가 1995년이다. 지금에 비하면 횡성군의 형편은 열악했다. 그만큼 할 일이 참 많았다. 앞들 구획정리도 그때 했는데, 당시 마산리 보를 막아서 물이 다 썩었다. 그 물이 논에 들어가면서 벼가 죽는 것을 보고 구획정리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구획정리를 하면서 택지도 만들었다. 경찰서 앞 택지는 김진선 도지사가 퇴임 후 토지공사 사장으로 있던 시절에 만들었다. 대동아파트 뒤에 종합운동장을 만들고 나서 강원도 군 단위 최초로 도민체전을 개최했다.

당시 홍천, 원주에서는 횡성이 도민체전을 개최할 능력이 없을 거라고 비웃었지만 보기 좋게 성공했다. 스포츠마케팅에서 앞서가던 양구군과 치열하게 경쟁할 만큼 횡성군 체육 활성화의 계기가 됐다. 종합운동장을 비롯한 체육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주변에 음식점이 들어서고 상권도 형성됐다.

학곡리 쓰레기장과 장례식장도 만들었다. 당시 횡성군의 쓰레기는 원주에 갖다 버렸다. 생각해보니 언제까지 원주에서 횡성을 쓰레기를 받아줄지도 모르겠고, 이에 대비하자면 횡성의 쓰레기장이 반드시 필요했다.

갑천 추모공원도 만들었는데, 쓰레기장이나 공동묘지 같은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주민들은 싫어했다. 여기저기서 데모가 일어났는데 이골이 날 정도였다. 지금은 횡성군민을 위한 시설로 자리를 잡았다.

횡성시장 전기지중화사업도 했다. 횡성읍내의 중심부에 있는 시장 주변은 거미줄 같은 전깃줄로 어지러웠는데 이걸 지중화로 싹 정리했다. 공사기간 중에 집집마다 전기가 차단되기도 해서 주민들이 불편을 많이 겪는 바람에 애를 많이 먹었다.

둔내 골프장, 서원 골프장, 우천 골프장 만들 때도 데모가 심했다. 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런 것들이 지금 횡성 발전의 기틀이 되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 횡성한우 명품화사업을 처음 시작하셨는데
▶횡성한우, 안흥찐빵, 횡성더덕 등 명품화사업 이어가야

횡성한우와 안흥찐빵, 태기산 더덕을 횡성의 대표적인 명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특히 횡성한우 명품화사업에 많은 예산과 공을 들였다. 영동고속도로 길목에 있는 새말IC에 주목했다. 이 부근을 중심으로 횡성한우 전문점을 만들면 잘될 거 같았다.

그래서 당시 축협조합장에게 우천한우프라자를 만들자고 했더니 장사가 안 될 거라며 못하겠다고 했지만 예산 2∼3억원을 지원해서 한우프라자를 만들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이후 횡성한우 전문점이 더 생기고 둔내에까지 생기게 됐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횡성한우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쌓아갔고 횡성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횡성한우를 두고 벌어진 군과 축협의 불협화음이다. 지금 횡성한우는 다른 지역 한우브랜드와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외지의 소비자들은 다른 지역의 한우에 비해 횡성한우가 지나치게 비싼 데 비해 맛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이런 반응이 반복되면 그간 쌓아올린 횡성한우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횡성을 위해서나 축산농가를 위해서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안흥찐빵은 할머니들이 직접 빚은 손맛으로 유명했다. 한때 전국 고속도로, 국도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다 없어졌다. 기계찐빵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안흥찐빵이 위기를 맞은 것이다. 횡성더덕도 마찬가지였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타지역의 더덕이 횡성으로 몰려들었다. 횡성더덕의 가치가 뚝 떨어졌다. 이 세 가지가 아쉽다. 마음이 편치 않다. 횡성한우, 안흥찐빵, 횡성더덕이 횡성의 명품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 횡성군정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횡성 고유의 가치가 경쟁력

역대 군수를 비롯한 정관계 출신 원로모임 회장으로(지금은 후배에게 넘겼다) 얼마 전에 군수를 만났다. 군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지금 횡성시장이 또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데 그런 리모델링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시장에는 사람이 꼬여야 한다. 정선엘 가보니 정선장에서 물건을 한보따리씩 사들고 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횡성시장은 지금 먹는장사만 된다. 의류나 신발, 공산품 같은 것은 대부분 원주나 서울로 가서 산다. 교통도 편해지고 값도 싸기 때문이다. 이런 것으로는 경쟁을 할 수가 없다. 횡성만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상품, 횡성의 산과 농촌에서 생산되는 걸 가지고 횡성의 특징이 있는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모인다. 이런 걸 좀 해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 횡성의 전모를 기록한 횡성군지가 나온 지 오래됐다
▶횡성의 기록유산 군지(郡誌), 개정판 필요

임기중에 횡성군지 증보판을 출간했다. 15년 만에 횡성군지가 새로 나온 것이다. 횡성군지는 횡성의 역사와 문화, 지리, 경제 등 횡성군의 전반적인 현황을 기록하는 중요한 기록유산이다.

퇴임을 앞두고 주변에서는 자서전을 써보라고 했다.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그 방면에 조예도 없었다. 그래도 민선군수로 있는 동안 횡성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만큼 횡성의 역사가 더해졌으니 이것을 횡성군지에 기록하는 것도 필요하고, 후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퇴임 전에 횡성군지 증보판이 나온 것이 개인적으로는 초대 민선군수로 시작해 11년의 군정 성과를 반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서전으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이기도 하다. 증보판이 발행되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횡성에는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기록으로 남길 군지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 지역언론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지역신문은 군정의 얼굴

아들이 횡성신문을 매주 갖다줘서 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다. 군수를 비롯한 다른 기관장들의 활동, 경제, 농업 등 전반적인 내용이 다 담겼다. 지역소식을 이만큼 다양하게 전해주는 것은 지역신문이 아니면 힘들다. 그래서 지역신문은 횡성군정의 얼굴이고 표상이다.

군정과 관련된 사람들은 지역신문을 통해서 지역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장, 반장에게도 다 보냈다(지금은 이장, 반장 등에게 지역신문을 보내는 예산이 삭감돼서 횡성신문은 정기구독자에게만 발송되고 있다). 가끔 행정이 편가르기를 한다는 소식을 보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

횡성신문이 이장들에게도 안 간다니 이해가 안 된다. 더 여러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예산도 그리 많이 들지도 않을 텐데. 횡성 인구도 얼마 안되는데 다 끌어안아야 한다.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 의회에서도 이런 예산은 생각을 좀 해주면 좋겠다. 지역신문도 군정의 비위를 맞추라는 것은 아니지만 알릴 건 알려야 한다.

- 횡성에서 살아온 이야기
▶횡성을 위해 태어난 사람

호적에는 1937년생으로 되었지만 실제로는 1938년 12월생이다. 만으로 치면 올해 83세다. 소싯적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 배구 안해본 운동이 별로 없다. 지금도 매일 아침 휘트니스센터에서 1시간 가량 운동하고 있다.

우천 창림초등학교를 나왔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에 못갔다. 그래서 우천고등공민학교엘 들어갔는데 2년 후에 정식중학교가 됐다. 횡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고위자과정을 수료했다. 초중고 동문회장, 고위자과정 총동문회장, 육성회장, JC회장, 라이온스 회장 등을 역임했다.

횡성고 3학년 때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전주에서 2년 근무하다가 장교시험을 봐서 보병학교 157기, 중위로 예편했다. 사회에 나와 재건국민운동에 8년 있었다. 거기서 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마을금고 조직관리를 맡으면서 도와 서울로 분주하게 다녔다. 월급도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열정이 넘쳐날 때였다.

정계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 이우현 국회의원, 김영호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국장으로 지역조직업무를 관장했다. 도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되면서 2년 활동하고 초대 민선 횡성군수에 출마해 당선됐다.

초대 민선군수는 임기가 3년이었다. 이후 3선에 성공하면서 11년 동안 횡성군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군수가 겉으로는 좋은데 힘든 직업이다.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다. 다른 기관장에 비해 감시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 천주교와 감리교에서 운영하는 은빛대학 총연합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제 다 내놔야지.

예전 방식을 버리는 것이 변화의 시작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 조태진 전 군수는, “이런 얘기 한번 하고 싶었다. 군민이 살길, 상인들이 살길을 찾으려면 예전방식 벗어나 바꿔야 한다.”고 했다. 지역원로에게 듣는 변화라는 말이 신선했다. 예전 방식을 버리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말씀이다. 새겨들어야 한다.

이철영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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