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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밥상머리 교육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6월 03일
↑↑ 이 정 미
횡성우체국장
ⓒ 횡성뉴스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의 뺨을 타고 흐르는 소리 없는 눈물을 꼭 보게 된다. 실연의 아픔을 표현하는 극적인 연출인 것은 알겠는데, 이게 참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눈물이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1년쯤 지나서 문득,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흘리고 나서 내가 왜 이러는지를 생각해 보게 했던 평생 딱 한 번의 그것.

16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출신이셨다. 아버지는 북한의 위생병이셨는데 남한 행을 선택하셨고 여기서 새로운 가정을 일구시고 나를 포함해 일곱 자녀를 키우셨다. 그렇지만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오죽하셨을까? 

이산가족 상봉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한적십자사에 가족 상봉을 신청하고 잘 안되어 허탈해하시던 모습, 사무치는 아픔 삭이며 강태공으로 노년을 보내셨던 당신, 나도 한 가정의 부모가 되어 있는 지금,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의 마음 이해되고 가슴 먹먹해진다. 

혈혈단신으로 남았던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칠남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하셨다. 게다가 옛 시절 누가 밥시간에 늦었다고 따로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무조건 칠남매 총집합, 서로 낮에 있었던 일들을 경쟁적으로 얘기하곤 했으니 화제는 끊어지지 않았고 지금도 밥을 먹으며 문득 그 때의 기억을 떠올라 히죽히죽 웃곤 한다. 

또 옛날 생각하는 거냐는 남편의 핀잔도 어김없고. 하지만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다하지 못한 책임감 때문이셨을까. 아버지의 교육은 엄하셨다. 칠남매 다 모여 있는 밥상머리이니 잘못한 것이 있을 때에는 혼나는 것도 예외 없이 단체훈육이었다. 

소위 밥상머리 예절이 뭔지 제대로 실행하셨던 것이다. 본인이 포로수용소에서 고초를 제대로 겪으셨으니 지금 부모 세대가 짐작할 수 없는 웬만한 혼냄이 아니었다. 상세 설명은 상상에 맞긴다.

집에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사랑의 매가 항상 정 위치에 비치되어 있었고, 동생의 잘못은 모두의 잘못이었다. 어떨 때는 동생을 잘 인도하지 못했다고 일곱 남매를 다 꾸짖으셨다. 군대식 단체 얼차려. 그러면 언니는 아버지께 대들기도 했지만, 모두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함께 일렬로 서서 종아리를 맞았다. 

요즘 아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교육방식. 사랑의 매. 아버지의 회초리는 당연한 것이었고 드라마에서 처럼 자식들이 잠들었을 때 아버지의 거친 손과 약이 다가왔다.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으로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던 어린시절, 둘러앉은 부모자식 간 지중한 인연으로 일곱남매 반듯하게 장성했으니 감사함 마음 그지없다.

요즘은 직장 분위기가 옛날과 사뭇 다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고 있고. 회식도 일주일 전에 공지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될 정도로 회사보다는 가족의 스케줄이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아이가 많이 없는 세상, 일곱남매를 기를 때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을 수 있을 텐데 부모자식 간에 벌어지는 끔찍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풍요롭고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해서 가정이 사려 깊고 베풀 줄 아는 인성교육의 현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남에게 베풀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 같은 성공한 사람들의 기부액이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질서정연하고 차분한가 보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나? 남을 이기라고 가르친다.

엄친아가 넘쳐나고 처음부터 “쟤는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질 않는다. 오늘은 뭐했냐고 물어보면 어제와 똑같다고 하고 그럼 어제는 뭐했냐고 물어보면 그제랑 똑같다는 식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최고이고 일찍 퇴근해서 가족이 모여도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으니 밥상머리 대화가 단절되고 자식이 배려 없는 아이로 자라도 할 말이 없다. 신랑이 변기 물 내리는 소리에 실망해서 이혼한 신혼부부 얘기, 참을성은 커녕 배려심은 1도 없는 해프닝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래서는 가정의 달이 무슨 의미가 있나.

가끔은 식탁이 아닌 거실 바닥에서 두레밥상에 둘러앉아 보자. 처음엔 어색해도 이야기 하나쯤은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이 별건가. 한두 회 반복되고 익숙해지면 실타래 실 풀리듯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섭섭한 것은 섭섭한 것대로 대화가 이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얘기를 나누는 것이지. 내용이 아니다. 처음부터 욕심내지 말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부모하고 대화도 하지 않는 아이로 커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런지. 

다음에는 물푸레나무 회초리 하나 장만해서 아버지 산소에 놓아드려야겠다. 아버지의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기념품이다. 다시 혼날 일은 없겠지만 덕분에 잘 자랐고 감사하다는 의미, 하늘에서도 나이든 자식 잘못하면 혼내달라는 뜻으로 드리는 선물이다. 

우리 일곱 남매가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추억.

인간이 밥을 끊지 않는 한. 밥상머리 교육은 영원하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6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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