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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의 보석상자 (69) 『 나는 7학년 후반생이다 』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9월 27일

↑↑ 현 원 명
횡성향교교육원장
ⓒ 횡성뉴스
2013년 횡성중학교에서 퇴임을 하였다. 막상 퇴직을 하니 집에서 우두커니 창밖이나 내다보다 다리가 아프면 TV를 보기도 하고 아내가 외출에서 들어오면 눈치가 보여 방으로 들어가 밥 먹으라는 소리가 있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전화도 오지 않고 찾아 주는 사람도 없어 멍하니 집 주변의 낙엽을 밟으며 어슬렁거렸다. 하도 답답하여 어느 깊은 산에 혼자 올라 살 수 있는 좋은 터를 발견하고 ‘여기가 좋겠네! 은둔의 낙원이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작심 3일이고 개미 쳇바퀴 돌듯 골이 찡찡 아픈 1년이 지나갔다. 좀 신바람 나는 생활이 없을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뜩 어느 책갈피에서 퇴직이라는 영어 단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retire로 re(다시) + tire(타이어), 퇴직이란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 타는 타이어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침대이다. 침대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죽기 때문이다. 집에서 해방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면 아내 눈치도 안보고 내 마음도 편하게 살 수 있다.

퇴직하면 얼마남지 않은 여생이 아니라 축구처럼 삶의 전반생은 지나갔고 다시 절반의 후반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이란 나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날로 동해안을 찾았다. 주문진 시장의 싱싱한 활어들이 펄떡 펄떡 뛰는 모습을 보며 설레이는 가슴으로 푸른 바다의 저 멀리 빨간 등대에 석양 노을이 질 때까지 거닐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활기찬 일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평생 교단에서 수업을 했으니 혹시 강의를 하는 강사로 나서보는 것이 어떠할까? 매우 두려웠지만 실오라기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한 가닥 자신감도 피어났다. 다른 일을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강사가 계속 나의 뇌리를 때렸다.

며칠 후 나는 서울 교보문고에 가서 강의 관련 서적을 구입하여 강의 이론과 방법을 뚜러지게 쳐다 보았다. 읽고 메모하고 말해보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좌충우돌했다.

국내 명강의도 찾아 다니며 배웠다. 많은 책을 구입하여 읽고 삶의 좋은 지혜 명언 교훈 등을 주제별로 내 생각과 결합한 글을 작성하여 카톡, 밴드, 페이스 북에 몇 년 동안 매주 1∼2회 올려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나는 횡성향교에서 교육원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횡성관내 초중고 32개교 인성교육 강사로 매년 강의를 하고, 또한 횡성 노인대학, 은빛대학(5교)에서 순회강의를 한다. 인성교육을 시키며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도 익혔다.

노인,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말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 어르신으로 사는 능력, 나를 키우고 깨우는 힘이 인성임을 자각하고 강의 활동을 통해 더욱 나 자신을 배워 나가게 되었다.

강의가 진행될 때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고개를 긍정적으로 끄덕끄덕 해주시는 순간 나는 정말 성취의 보람을 느꼈고 행복하며 이것이 내 퇴직 후의 후반생 의미라고 생각했다.

또한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내가 강의실을 나갈 때까지 눈 웃음과 목례로 인사하며 박수를 오래 쳐주는 모습에서 역경이라는 상처도 있지만 희망이라는 붕대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직은 또 다른 시작이다. 나는 퇴직 7년차로 7학년 후반생이다. 나는 강의를 대개 무료로 봉사한다.

1년에 2,000개 씨를 날려 보내는 한 송이 민들레처럼 나는 더욱 봉사하고 싶다. 어느 날 횡성신문 대표이사께서 나에게 독자기고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망설였지만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하여 매주 독자들에게 삶의 희망 사다리, 꿈 전도사가 되는 칼럼을 쓰고 있다. 그리고 계속 나의 글을 카톡, 문자, 밴드,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에 올려 수많은 댓글을 받아 나의 행복 충전소가 되고 있다. 며칠 전 횡성지역 교육삼락회 정기 모임에 참석했다.

교육삼락회란 퇴직한 교직자들의 모임으로 배우고 가르치며 봉사하는 단체이다. 전임 유관종 회장님께서 갑자기 일어나셔 노란 스크랩북을 펼치면서 파일속에 보관된 나의 수개월 분량의 횡성신문 기고 글들을 모든 회원들에게 보여 주시면서 나의 글이 너무 좋다고 칭찬해주셔 매우 민구스러웠지만 내심으로는 뿌듯했다.

이제는 횡성관내 많은 주민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도 건네며 격려의 말씀도 해주셔 살아가는 맛이 난다.

횡성문화원 이사로 매년 횡성문화 책을 발간하는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횡성문화의 정체성과 횡성의 애국지사 선양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어 자긍심을 느낀다.

충효예 실천운동 강원도 연합회 고문직과 횡성회장으로 횡성을 넘어 강원도내 초중고 학교를 찾아가는 충효예 강의를 한다.

성균관 인성교육강사로 전국 강의를 하게 되며 유도회 강원도본부 강사 위촉을 받아 동양고전의 지혜를 일선 학교와 도내 향교 유림들에게 강의를 한다.

또한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새벽부터 500평 땅에 아로니아, 고추, 참깨, 토마토, 고구마 등 밭작물을 심어 구슬땀을 흘리며 아내와 농사를 짓고 텃밭에서 금방 뜯은 상추쌈으로 아침 밥을 함께 먹는 것이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고 오후에는 각종 강의를 다니는 봉사활동이 나의 인생 2막이다.

나는 퇴직후 생활 좌우명으로 “누가 할 일은 내가, 언제 할 일은 지금, 어차피 할 일은 즐겁게”를 매일 실천한다.

현대인 5복(福)중에 부부의 공통취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서민적 스포츠로 그라운드 골프를 함께 한다. 같이 하다보니 부부간 대화거리가 새록새록 생겨나고 활기 넘치는 부부의 정을 느끼게 되어 행복하다.

처화만사성으로 아내와 화목하면 만사가 잘 이루어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남편의 집은 아내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소취하 당취평 -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지만 당신에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

퇴직 후 두 가지, 즉 왕성한 봉사 활동과 부부간 화합의 방정식을 잘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숙제이다. 인생이란 어리석은 자에게는 경주이다. 온 몸과 가슴 그리고 열정으로 7학년 후반생인 나는 내일도 계속 달려갈 것이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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