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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통해 북(北) 가족에게 생계비 보내”… 경제난민 탈북여성


정종현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11일
↑↑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에서 산화한 횡성군 출신 군·경·민(軍警民)의 이름이 적힌 위패.
ⓒ 횡성뉴스


북미정상회담 결렬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북한에서 굶주리다 홀로 탈출한 이들은 북에 남겨진 가족이 굶지 않도록 돈을 송금했다. 

하나원 퇴소 후 한국 사회 적응에 가장 큰 어려움이 ‘취업’으로 꼽히는 만큼, 이들은 그 돈을 위해 범죄로부터 취약한 곳에서도 일했다. 

한 탈북여성은 “북한을 벗어난 가족이 한 명도 없는 가정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10∼20명 그룹 만들어 대규모 탈북
적발 대비 ‘쥐약’ 챙겨 
북한이탈주민 여성 비율 86%
“처음엔 한국 올 생각 없었다”


전문가 등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로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 격차가 벌어지면서 정치적 이유였던 탈북이 식량난·경제난 해결을 위한 탈출로 바뀌었다. 본보 기자가 신분을 숨기고 만난 횡성군 소재의 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A(여·33)씨 또한 같았다.

A씨는 “북한에서 고위층으로 지내다 탈북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굶주림이 이유다”라며 “이 때문에 처음 목적지는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북에서 탈출한다”고 말했다.

A씨는 1년여 전 10∼20명으로 이뤄진 그룹에 속해 탈북을 감행했다. 최근 한국으로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북한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등을 두고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의 수 감소 원인이 북한의 단속 강화로 해석되듯 A씨는 목숨을 담보로 중국의 담을 넘었다.

A씨는 “호주머니엔 쥐약이 있었고, 일이 꼬이면 그 자리에서 죽을 생각이었다. 독하게 북을 빠져나왔다”며 “며칠을 걸었고, 며칠은 버스를 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의 탈북 경로는 보통 브로커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와 한동안 숨어지내다 태국, 몽골, 라오스 등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다. 여기에 A씨는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이 중국 방송 등에서 한국의 경제적 여유를 알게 된 후 한국행에 나선다고 했다.

A씨는 “재북 당시 ‘한국은 거지와 노숙자가 많은 못사는 나라’로 배웠다. 그러나 중국 방송을 통해 본 한국은 너무나 달랐다”며 “당시 충격은 눈이 뒤집힐 정도였다. 더는 중국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A씨처럼 한국으로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 여성 비율은 10년간 70% 이상을 유지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1998년 12%(총 947명 중 113명)에 불과했던 여성 비율은 2002년 처음으로 절반 이상인 55%로 나타났다. 

이후 10년 후인 2012년에는 72%, 2018년 9월 86%(총808명 중 697명)로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20∼30대 여성으로 한국에 정착을 시도하다 생활고를 겪고 성매매 등 성범죄에 노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돈이란 올가미에 걸리는 것이다.

A씨는 “2차(성매매)·노래방 도우미 등을 제안받는다”며 “하는 일 특성상 집 주변에서 일하면 이상한 소문이 퍼질까봐 등록된 거주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횡성까지 왔다. 횡성 한우는 들어봤지만, 강원도 땅은 처음 밟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여성 B씨 또한 “집은 서울이다. 횡성으로 오기 전에는 회사에 다녔었다”며 “나뿐만 아니라 대구에 집을 두고 횡성에서 일하는 탈북여성도 있다. 쉬는 날에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가족 살리려 화교 브로커 통해 돈 보내 
수수료 30% 제외하고 전화로 전달 확인
“가족 중 한 명이라도 탈북해야 먹고 산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2월 20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김성 대사가 유엔에 긴급 식량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사는 세계식량계획(WFP)과 공동으로 북한의 식량 상황을 평가한 결과 지난해 전체 식량 생산량이 495만1,000톤으로, 2017년에 비해 50만3,000톤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3월 4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북한으로 구호물자 밀 4,000톤을 지원했다고 전했다.

A씨는 “유엔의 제재로 북한에 석유가 없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없다. 일부에서는 증기를 이용한 트럭이 여전히 운행된다”며 “두 다리로 걸어 다녀 ‘11호 차’를 타고 다닌다는 농담이 흔하다”고 말했다.

재북 당시 A씨는 영국식 영어 등 고등교육을 받았다. A씨는 고등교육까지 정부의 지원으로 무상으로 받지만, 학생들은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학교에 나온다고 설명했다.

A씨는 “교사가 학생들의 출석을 세심히 관리한다. 결석에는 처벌이 따르기 때문에 학생들은 쫄쫄 굶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학교에 나온다”며 “점심 급식은 없다. 옥수수밥·김치 도시락을 먹거나 그마저도 없는 학생들은 굶는다”고 했다.

이어 “많이 알려져 있듯 북한은 식량난이 심각하다. 그래서 쌀밥 먹는 재미로 명절을 좋아한다”며 “북에서 먹던 옥수수, 호박, 감자를 더이상 먹지 않는다. 쌀밥만 먹는다”고 말했다.

A씨는 탈북하면서 굶주림이란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북에 남겨진 가족은 여전히 식량난으로 고통받는다. 이 때문에 A씨는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번 돈을 북으로 보냈다. 

A씨는 북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은행이 없어 북한에 거주하는 화교 브로커 통장에 돈을 입금한 후 이들이 가족에게 건네주는 방법으로 송금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A씨는 “탈북을 계획하다보면, 홀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다”며 “혼자라도 북에서 벗어나 남겨진 가족에게 돈을 보내줘야 먹고산다. 탈북민이 없는 가정은 굶어 죽는다”고 전했다.

이어 “화교 브로커들은 중국 전화기(휴대폰)를 가지고 있다. 100만원을 입금하면 수수료 30%를 제외하고 가족에게 전달한다”며 “사람을 시켜 가족을 찾고 부모와의 통화 연결로 얼마를 건네줬다는 확인을 해준다”고 설명했다.


올해 북미정상회담으로 자유로운 전화통화·편지 기대
“횡성에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북한 출신 업신여기지 않아”


횡성군에 따르면 횡성에 거주지를 둔 북한 출신 주민들은 올해 3월 기준으로 22명이다.

B씨는 “일부 연변 출신 근로자들이 북한 출신으로 속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북한 출신으로 소개하면 한국에선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으로 친절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며 “그런 이유로 출신지가 다르다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 지난 2월 28일 A씨는 “횡성에서 한 달여 정도 있었지만, 북한 출신 여성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순수함을 느꼈다”며 “그래도 북에 있는 가족과 자유로운 전화통화·편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종현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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