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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우리마을- 청일면 신대리

신대계곡 및 천년고찰 봉복사 중심으로 펜션·야영장 운영 활발, 휴양지로 한몫
여름행락객 많이 찾는데 현재의 마을길은 좁아 통행 불편, 2차선으로 넓혔으면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5월 15일

「하늘에서 바라본 고향마을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는 ‘누구누구네 집’하며 집집마다 누가 사는지 속속들이 알고, 눈감고도 알 수 있을 만큼 골목골목도 소상히 꿰뚫지만 전체의 마을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으로, 각 마을을 찾아 ‘하늘에서 내려다본 정겨운 우리 고향마을’ 사진과 함께, 마을유래 및 특성, 주산물, 현재의 주민 생활상 등을 알아본다.」

ⓒ 횡성뉴스

청일면 신대리(晴日面 新垈里)는 횡성읍(군청)에서 26.9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승용차로는 약 36분여 횡성읍에서 태기로 읍사무소와 경찰서를 지나 청일 방면으로 약 1.8km 이동하다, 청일로 신대리·둔내 방면으로 우회전 후 한참을 가다보면 신대리(新垈里) 마을이 나온다.

신대리(이장 주영식, 59)는 140세대 170여명의 주민으로 4반까지 있는 마을로 1반은 이상호 반장, 2반은 조영선 반장, 3반은 고경철 반장, 4반은 박성대 반장, 노인회장은 홍성학 회장, 새마을지도자는 정대기 지도자, 부녀회장은 백길순 회장이 맡아 주영식 이장과 함께 서로 협력하고 힘을 합쳐 마을살림을 꾸려가고 있으며, 주민들 중 대부분이 귀촌인이며 원주민은 40여명 정도이다.

신대리는 ‘봉복산’ 밑에 새로 된 마을이므로 새터 또는 신대(新垈)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성골, 동문밖, 한나루터, 들메지, 여내, 당거리를 병합하여 신대리라 하였으며, 본래는 갑천면에 속해 있다가 1973년에 현재와 같이 청일면에 편입되었다.

또한 이 마을은 1972년도까지만 해도 9개 반이 있던 큰 마을이었으며, 당시 신대초등학교는 학생수가 120여 명에 이르렀으나 화전 정리 및 녹화사업 등으로 인하여 차츰 인구가 감소하며 현재는 4개 반으로 줄었고, ‘신대분교’로 축소된 지금의 초등학교 역시 학생수는 전교생이 3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마을은 거의 전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농사규모는 크지 않고, 한우를 사육하는 소규모 축산업 겸업농이 5농가이며, 4∼5농가가 밭작물 3000여 평을 재배하고 있고, 5000여 평 이상 농가는 한 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마을은 펜션 운영이 활발한데 ‘신대계곡(新垈溪谷)’을 중심으로 마을 자체에서 운영하는 펜션 3동 및 야영장과, 개인이 운영하는 펜션 10여 곳 및 사설야영장 3곳이 외지관광객 및 여름바캉스 가족들을 맞이하고 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숲속의 집’ 펜션 3동과 야영장은 지난 2006년도 경 횡성군의 ‘산촌체험마을 지원사업’으로 조성돼, 연매출 3500만원 정도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기획재정부 소유인 야영장 부지는 년간 임대료로 52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

또 이 마을엔 신라 선덕여왕 16년(647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천년고찰 ‘봉복사(鳳腹寺)’가 자리하고, 봉복산 등산로와 태기산 등산로가 갖추어져 있으나 태기산 정상엔 풍력발전단지와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어 정상을 오를 수 없음이 몹시 안타깝다고, 주 이장은 이를 크게 아쉬워했다.

횡성군지(橫城郡誌)에 소개된 신대리 마을내 옛 지명을 살펴보면, 먼저 ‘가래소골’은 박야암 위에 있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큰가래소골과 작은가래소골이 있다. ‘고무목’은 양지말에 있는 산의 터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전에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을 지켜 곰을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곰목’이라고도 한다.

‘다리목’은 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자연부락명으로 한자로는 다림목(多林目)이라 하고, ‘마구할미바우’는 작은성골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로 마주 보이는 바위에 마구할미가 빨랫줄을 매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물아가리’는 작은성골 안에 있으며 물이 모이는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버덩처럼 생긴 이곳에서 넓게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법당골’은 한남대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첫 번째 있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봉복사 법당과 통하는 골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보매기골’은 성골 초입 왼쪽에 있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를 막은 골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터’는 성골의 성이 있던 터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전에 하지 이후에도 비가 안 오면 이곳에서 군수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고, 또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성터에 누가 묘를 써서 그렇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확인했다고 한다.

‘어두어니’는 속실리와 통하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해가 일찍 지며 한 여름에도 오후 4시경이면 어두워지고, 다른 곳보다 어둡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 터 뷰 ∥ 주 영 식 신대리 이장
“원주민들과 귀촌인들간 잘 융화되는 마을 되길 희망”

ⓒ 횡성뉴스
신대리 주영식 이장은 이 마을 토박이면서 젊은 시절 30여년은 외지에서 직장생활 및 자영업 등에 종사하다, 지난 2002년 경 귀향한 후 2009년부터 마을이장을 맡아 올해로 8년차에 이르고 있으며,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은 노인회(현재 회원은 70명) 사무장을 역임하고, 2015년∼2016년 2년은 청일면이장협의회장, 2016년 청일면체육회장을 역임했다.

주 이장은 현재 ‘하늘아래 첫 집’ 펜션을 2006년경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밭 5000여 평에 직접 가꾸고 재배한 배추 및 콩 등 우리농산물로 절임배추 사업 및 된장사업을 실시하고, 산나물 재배사업도 실시하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 홍춘미(59) 씨와 1남의 자녀로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주영식 이장은 “여름이면 행락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지금의 일방로 수준의 마을길은 너무 통행이 불편해 2차선으로 넓혀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유지를 확보해야 해 이를 군에서 지원해 추진됐으면 좋겠고, 현재 주민들은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는데 얼마 전엔 신대분교에서 비소가 검출돼 다시 관정을 파고 설비공사에 들어가 곧 새물이 공급될 예정이지만, 청정지역으로서 비소가 검출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로, 하루빨리 마을 전체에 상수도가 들어와 안전한 물을 먹을 수 있기를 학수고대 한다”고 말하고, “또 마을에서 둔내 방향으로 연결되는 도로도 하루빨리 개설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주 이장은 “오래 전 마을의 한 주민이 부지를 희사해 마을회관 겸 경로당을 신축했지만 위치적으로 너무 마을아래에 자리하고 있어, 몇 년 정도 꾸준히 기금을 조성해 중간지점 쯤 부지를 구입해 새로 지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한편, 주 이장은 “예전에 마을 앞으로 송전탑이 지나가며 이해관계에 따라 마을주민들이 분열됐던 일이 가장 안타까웠다”며 “이제는 그런 일 없을 테고 지금 현재도 잘되고 있지만, 원주민들과 귀농·귀촌인들간 잘 융화되는 정이 넘치는 신대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횡성뉴스 기자 / hsg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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